최근 대학노래운동의 전개양상과 전망
 
 

--------------------------------------------------------------------------

**꽃사람 10월호에 실었던 글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라!

--최근 대학 노래운동의 전개 양상과 전망--

박종훈(꽃사람)

 

어진 노래들이 주로 거리에서 불리어졌고 노동 현장으로 침투되기도 했

다. 그러나,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그리고 노동자 출신의 작곡

가 김호철의 막대한 영향력을 받으면서, 90년대부터는 노동 현장으로부터

노래의 역조 현상이 일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게다가 90년대 들어 각종

단대 노래패, 과 노래패 등이 우후죽순격으로 양적 팽창을 보임에 따라,

음악적 역량은 상대적으로 분산되어 떨어지게 되었으며, 노래를 찾는 사

람들, 꽃다지 등 전업 노래패가 속속 창단되자, 대학 노래운동의 상당 부

분은 이들 전업 노래패의 카피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 92년 대선

이후 민중 가요의 주요 보급지였던 집회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대학의

문화가 개량적으로 변질됨에 따라, 대학 노래운동은 급격한 쇠퇴의 경향

을 보이게 된다.

점점 더 많은 학우들이 민중 가요로부터 등을 돌리자, 대학 내에서의

민중 가요의 입지를 확보(아니, 생존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

다)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기울여졌다. 90년대 중반 이후 대학 노래운

동의 경향은 바로 이러한 노력들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반이라는 뚜렷한 결과물을 놓고 이 노력들의 면모를 살펴보기로 하자.

은 아마도 서울하늘이었을 것이다. 서울지역 대학생 노래패 협의회(서대

노협) 내의 정예 멤버가 규합하여 만든 서울하늘은 1993년, 최초로 신디

사이저의 시퀀싱만으로 반주를 구성하고 팝발라드적인 정서가 담뿍 담겨

있는 비합법 1집 음반을 냈다. 그러나 이 음반은 <내일이 당당해질 때까

지>, <우리들의 희망> 등 빼어난 곡들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가

요적인 반주에 민중가요적인 창법이 기가 막힌 부조화를 낳으며 당시 혹

평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보급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정파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된 채 사장되어야 했다. 이후 두 명의 메인 보컬

과 5명의 연주팀으로 전열을 가다듬은 서울하늘은 1995년 이른 시기에 합

법 음반을 내게 된다. (메인 보컬을 담당하며 상당수의 곡을 작곡한 심상

현의 향후 행로를 주목하길!) 그러나 여행 스케치의 음악을 연상시킬 정

도로 세련되고 부드러운 음악들을 담은 이 음반은 빼어난 음악적 성취에

비해 전달하는 메시지가 지나치게 약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

고 이 음반 역시 널리 보급되지 못한 채 사장되어 버리고 만다.

서울하늘을 문화게릴라에 비유할 수 있다면, 한총련의 각 지역총련 노

래패들은 조직의 힘을 빌어 비교적 안정된 유통 구조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비가 된다. 듣는 사람이 그만큼 많으므로 더욱 신경을 써야 하

는 셈이다. 이 중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팀은 서총련의 조국과 청춘, 부

경총련의 좋은 친구들, 경인총련의 천리마, 이렇게 셋이다.

이 세 팀 중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팀은 역시 조국과 청춘이다. 이들

은 록, 보사노바, 발라드, 포크 등 다양한 양식을 차용하여 자신의 5집

음반을 완성도 높은 합법 음반으로 만들어 냈다. 이 앨범은 민중음악에

대해 점수가 짠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에 의해 매우 긍정적인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음반이 과연 조국과 청춘의 독자적인 음반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음악 감독은 바로 <바위처럼>의 작곡자 유인혁, 편곡은 윤도현

밴드의 강호정과 이스크라의 김국현, 그리고 수록곡의 6곡이 외부 작곡자

에 의한 것. 조국과 청춘의 최대 과제는 음악 작업의 헤게모니를 자신들

에게로 옮겨 오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대학 노래패의 속성상 멤버의

물갈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러한 과제 해결이 얼만큼 가능할지는 의문

이다.

경인총련의 천리마는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능력에 의한 음반을 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노래의 면모가 과연 학우들에게 얼마나 다

가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음반의 전 트랙에 걸쳐 느껴지는 것은 악곡의

구성에서나, 창법에서나 '희망새의 아류'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희망새의

음악에 담겨 있는 정서는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바로 북한의 대중음악에

서 느껴지는 그것이 아니던가? 통일을 향한 열망이 이들의 음악 형식을

그렇게 결정지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당시/거기'의 전형적 대중성

을 '지금/여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천리마의 음반도 엄격히 말하면 자신들만의 음악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약간 어정쩡해 보이는 부경총련의 좋은친구들의 음반은 이러한 점에서

보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전형적인 투쟁가에서 소프트한 록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 좋은 친구들의 음반은, 미디에 의존

한 리듬파트가 어설프게 들릴지라도, 8트랙짜리 싸구려 녹음 시설에서 녹

음되어 음질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딱히 매력적으로 들리는 히트 넘버

가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에 의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

서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하늘과 같은 개별적인 팀과 지역총련의 노래패의 활동에 덧붙여 90

년대 중반 이후에 주목해야 할 것은, 대중음악계의 인디 레이블에 대응할

만한, 민중음악계의 아마튜어(?) 저예산 음반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녹음 장비의 가격이 점점 낮아지고,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서 이

른바 홈스튜디오 레코딩이 점점 보편화되면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사실, 꽃다지나 노찾사같은 전문 노래패, 혹은 전문 음악인들의 후원을

받은 조국과 청춘같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프로와 아마의 구별이 힘든 척

박한 처지에 아마튜어들의 활발한 활동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마튜어 노래운동에서 뚜렷한 결과물을 보인 집단은 바로 PC통신 민중가요

동호회 '노래하나 햇볕한줌'이다. 동호인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순수 아마

튜어인 이들은 96년 초 기존곡과 자신들의 창작곡을 담은 2집 음반(스튜

디오 앨범으로서는 첫 음반이 된다)을 냈다. 좋은 친구들의 음반을 녹음

한 곳과 같은 곳에서 같은 시설에 의해 녹음된 이 음반은 좋은 친구들의

음반보다 더 음질이 떨어지고 가수의 역량들도 매우 떨어지지만, 자신들

의 창작곡과 자신들의 편곡에 의해 음반을 냈다는 점에서 그 창조성을 인

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음반에 참여하고 민중가요 노래책에까

지 수록된 <함께 가요>를 작곡한 조성범은 최근 자신의 창작곡 앨범을 내

기에 이르렀다.

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어떻게 자신들의 역량

에 의한 창조적인 음악을 선보일 것인가이다. 이는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대학 노래패의 속성상 구성원의 교체가 불가피하므로 음악 역량

의 재생산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병행하여 집회 공간 이외

의 유통 구조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바로 이 유통 구조라는 측면에

서 노래하나 햇볕한줌의 음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연은 일회적으로

끝나지만 음반은 여러 번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 집회 장소나 공연 장

소에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보다는 조직의 힘을 이용해서 테입을 나누어

주는 것이 훨씬 쉽다.

노래하나 햇볕한줌의 음반조차도 녹음은 다른 주체(작곡가 윤민석)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녹음기기의 대중화와 홈스튜디오 레코딩의 보급

은 자신들에 의한 기획, 창작, 편곡, 연주, 녹음의 전과정을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음질이 떨어지고 역량이 좀 떨어지면 어떤가? 문제는 어떤

'입김'이나 '우상'에 휘말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있

다.(*)